몇년 전쯤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읽었다.
"베스트 셀러"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더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읽어버린 책...
너무 노골적인(?) 제목...

'책이란 읽으면서 깊은 시간을 두고 생각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니야?'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그 책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너에게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줄거야! 그 방법은 7가지거든. 1번은 이런 것, 2번은 요런 것, 3번은 저런 것.... 7번은 이것이지...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습관화하는 거야. 알겠지? 이제 이 책을 펴서 확인해봐!!"
어쨌든 모든 느낌과는 상관없이 책을 빌리게 되었고 읽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씩 읽어 갈 때마다 스티븐 코비의 깊은 통찰력과 성품 윤리에 대한 설명들이 나를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모두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가지가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었다. 왓슨의 행동주의 이론
행동은 자극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학창 시절 배웠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파블로프의 실험이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울려 종 소리를 들을 때 개가 침을 흘리도록 하는 조건화 실험이다.
나중에는 먹이 없이 종만 울려도 개는 침을 흘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을 기초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이론이 왓슨의 행동주의 이론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왓슨이 정의 내렸던 행동주의 이론을 충실히 따르며 살았던 것 같다.
(오랫동안이라는 표현보다 평생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라는 과정의 반복이다.

알람 시각에 맞춰 일어날 것인가?
세수를 할 것인가?
학교에 갈 것인가?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집중할 것인가?
자율학습 시간에 도망갈 것인가?
뛰어가서 버스를 탈 것인가?
지름신의 명령에 따라 멋진 디카를 살 것인가?
오전 중에 서류 정리를 마칠 것인가?
퇴근 후 동료들과 술을 마실 것인가?
설겆이를 저녁까지 미뤄뒀다가 할 것인가?
홈쇼핑에서 쥐포 200마리에 28,000원 하는 것을 살 것인가?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선택할 것인가?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할 것인가?
안정된 공무원에 도전할 것인가?
조그만 벤처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인가?
일찍 결혼한 뒤 안정된 기반을 마련할 것인가?
안정된 기반을 마련한 뒤 결혼을 할 것인가? ......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미래를 결정지을 만큼의 큰 선택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왓슨이 정의 내렸던 것 처럼 행동이란 자극 - 태어날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의 많은 경험들 - 에 의해 결정 내려지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제는 알람 소리만으로도 일어나게되었다.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잔소리와 일찍 일어나는 상관관계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질문도 하고 대답을 했더니 칭찬을 들었다.
이번 중간 고사에서는 평소보다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더니 평점 4점이 넘었다.
아내와 심하게 다툰 뒤 먼저 사과를 하고 나의 마음을 털어놓았더니 둘의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출근할 때마다 회사 경비 아저씨께 깍듯이 인사를 했더니 나에 대한 경계(?) 수위를 낮췄다.
이런 경험들 하나 하나가 행동을 결정 짓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동물과 다른 천부적인 재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자극과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혹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동물처럼 단순히 학습된 자극(경험)에 의해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극에 대한 반응을 선택하는 힘이 어떤 사람에게는 크고 어떤 사람에게는 작다는 차이 뿐이지 분명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선택의 힘이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다.

잘 알고 있는 삼사일언(三思一言; 세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라)과도 뜻이 통한다고 하겠다.
자극 => | <= 공간 =>| => 반응
누군가 나에게 머리가 크다고 놀렸다.(나의 치명적 약점...ㅡㅡ^)
바로 화를 낼 것인가?
잠시 참고 그 사람에게 다른 방법으로 나의 감정을 표현할 것인가?

그 사람이 나더러 눈까지 작다고 한다.(어떻게 이런 약점까지 알았을까?)
주먹을 날릴 것인가? 잠시 참고 그 사람에게 다른 방법으로 나의 감정을 표현할 것인가?
항상 나의 선택은 전자에 가까웠다. 주먹까지 날려 본 적은 없다. ^^

가끔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퇴근했는데 밥통에 밥이 없을 때면 언성이 높아지던지, 짜증을 부리던지 혹은 잔소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요즘 새로이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 힘의 위력을 느끼고 있다.
자주 신경질 적이던 내가 그런 자극에 대해 잠시 기다리며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아내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나를 불편하게 하던 상황들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평소 짜증을 많이 내던 내 성격에 많은 상처를 받았던 아내도 나의 변화를 조금 눈치채는 것 같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 조금 넓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택이란 겉으로 들어난 행동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즉,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인가, 퇴근 후 동료들과 술을 마실 것인가와 같이 겉으로 분명하게 들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만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 또한 사랑, 기쁨과 같은 추상적 감정에 대해서는 선택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을 보면 '사랑스럽다', '첫눈에 반했다', '널 보면 사랑할 수 밖에 없어', '네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도 없어' 등과 같이 상당히 수동적인 느낌이다.
즉, 상대의 어떤 행동, 외모, 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정 지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쁨, 감사, 행복이라는 감정도 상황에 의해 지배받는 수동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성경을 볼 때마다 항상 눈에 크게 띄는 구절들이 있다.
'서로 사랑하라'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이런 표현들은 아름답고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들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런 감정들은 내가 선택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누군가가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했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기뻐했고, 좋은 것을 얻었을 때만 감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에 대해 알게되었고 그 공간, 즉 선택의 힘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된 후에 사랑, 기쁨, 감사와 같은 추상적 감정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 보편적 힘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선택의 힘을 인정하고, 그 선택을 위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마음에 품는 감정 등 우리의 삶에 결정이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선택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이런 자극과 반응의 공간 사이에 있는 선택의 힘을 경험해 보기 원한다.
설명한 내용을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혹시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보라고 강력하게 제안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이론에 흠뻑 빠져 있을 때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생겼다.
이 이론은 다분히 인본주의적이란 것이다.
크리스챤인 나로서 아무런 분별함없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다음 글에서 이 부분도 다루어 보고 싶다.